
한 아이의 삶을 가로지르는 채화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싶은 아이
장인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와요.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맑아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궁금해할 수도 있어요. ‘한 번 보고 말 것을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만들까?’ 하고 말이에요. 더군다나 내가 만약 앞으로 그러한 장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면 수없이 고민했을 거예요. 《나비 공주》에서 도래가 그랬던 것처럼요.
도래는 궁중채화장의 아들이었어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채화 공방을 이끌어야 할 운명이었어요. 하지만 도래는 점점 채화가 싫어졌습니다. 궁중행사를 마치면 태워 버려야 하는 ‘가짜 꽃’을 만드는 것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도 못마땅했지요. 남들보다 빼어난 솜씨와 지식을 갖추었으면서도 다른 일거리를 찾아 방황했습니다.
아버지는 도래를 채화 공방으로 데려갔어요. 공방에서 지내다 보면 흔들리는 마음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기대했지요. 하지만 장인들 곁에서 심부름을 하며 채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도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 도래 앞에 정소가 나타납니다. 도래는 정소가 공주인 줄 모르고 궁궐 나인을 대하듯 했어요. 궁에 들어가 임금님 곁에 선 정소를 보고서야 공주라는 것을 알았지요. 정소는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친구처럼 대하는 도래가 마음에 들었어요. 둘은 그렇게 우정을 키워 갑니다.
정소의 부탁으로 채화를 만들면서 도래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져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채화를 만드는 장인들의 수고와 노력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채화 장인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꿋꿋이 세월을 견뎌 내고
마침내 봄을 맞이하다
정소 공주는 세종대왕의 큰 딸이에요. 태종의 첫 손녀였기 때문에 태종과 원경왕후는 물론 왕실 어른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어요. 특히 세종대왕은 유난히 정소 공주를 아껴서, 정사를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친히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소 공주는 열세 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녀가 죽은 뒤 세종대왕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가슴 아파했어요.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있었지요.
정소 공주와 도래는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눕니다. 하지만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돌림병이 크게 돌면서 정소 공주를 비롯해 아버지와 삼촌까지 목숨을 잃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떠나보낸 도래는 마음에 큰 병을 얻었어요. 입을 꾹 닫은 채 사찰에서 쓰이는 지화를 만드는 데 매달렸지요.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도래는 마음 속에서 정소와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난 날 아버지가 했던 말을 돌아보며 가슴속에 새겼지요. 그만큼 채화를 만드는 손끝도 더욱더 단단해졌습니다.
하나의 채화가 피기까지는 오랜 기다림과 수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작가는 채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이야기 속에 녹여 냈어요. 덕분에 독자들은 궁중채화의 이모저모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요. 우리 선조들의 전통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도래는 시련을 이겨 내고 듬직한 장인으로 자랐어요. “극심한 더위와 추위, 가뭄과 장마를” 견뎌 낸 꽃처럼 마침내 봄을 맞이했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크고 작은 어려움을 넘어서며 우리는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몸도 마음도 단단히 여물어 가지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도래의 성장담은 특별한 울림을 전할 거예요. 또 삭막한 경쟁 속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줄 거예요. 《나비 공주》를 읽은 아이들이 모두 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2018년 하반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