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바쳐야 하는 공주와
왕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왕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내주고, 베풀고 싶습니다.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주는 것도, 내가 가진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도 조금도 아깝지 않아요. 더구나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서 못할 일이 없지요. 그것이 삶을 뒤흔들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라도 말이에요. 《동해》에서 탐화의 왕 하백 역시 딸인 동해를 위해서 큰 결심을 했어요. 동해를 살리기 위해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도망치듯 숲으로 들어갔고,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았어요.
탐화에는 위기가 닥쳤을 때 공주가 사신동굴에 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다는 전설이 있었어요. 바로 동해가 탐화를 위해 희생이 될 공주였던 거예요. 하백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동해에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한편 하백의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오른 권호왕에게는 이랑이라는 아들이 있었어요. 전설에 의하면 이랑은 왕자가 아니라 공주였어야 했지요. 권호왕은 이랑이 사내라는 것을 숨기고 공주로 살아가게 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실이 밝혀지고 궁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그날부터 권호왕은 이랑을 멀리합니다. 왕자로 인정하지도 않았지요. 이랑은 자신이 왜 공주로 살았어야 했는지 궁금했어요. 전설 속 ‘사신동굴’을 찾아나섰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동해를 만나게 되고 둘은 함께 사신동굴로 들어갔어요. 동해의 손이 제단에 닿자 신비한 빛과 함께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깨어났어요. 사신은 탐화의 평화를 위해 동해에게 죽음을 달라고 하지요.
자신이 공주인 줄도 몰랐던 동해는 사신의 말에 기가 막혔어요. 아버지 하백이 남긴 말도 새삼 떠올랐어요. 동해는 사신을 향해 목숨을 내어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돌아섭니다. 완고하던 동해의 마음은 사신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억울하게 희생된 여자아이들의 혼이 깃든 수옥동굴에 찾아가면서 차츰 달라지기 시작해요. 그리고 마침내 결심하지요.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사신들과 힘을 합쳐 액을 쫓고 백성들을 돕겠다고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꼭 닮은 탐화,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
《동해》 속 탐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닮아 있습니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잔혹한 일도 서슴지 않는 권호왕의 모습이나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궁궐 안의 암투, 백성들의 곤궁하고 비참한 생활……. 정설아 작가는 ‘탐화’라는 상상의 세계 속에 현실을 촘촘하고 실감 나게 담아 냈습니다. 전작 《게임의 법칙》에서 냉혹한 현실에 던져진 아이들의 모습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면, 《동해》에서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당당히 맞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따뜻하고 정갈한 필체로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림을 그린 한담희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어우러져 《동해》는 동화의 진정한 힘을 완성해 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동해의 고민이 더욱 가슴 깊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모두가 할 수 없다고 여겼던 일을 동해는 이루어 냈어요. 현무의 힘을 이용해 가뭄으로 메마른 마을에 물이 쏟아지게 했고, 청룡의 도움을 받아 약초를 구해 환자들을 치료했어요. 사신과 함께 적국의 침임을 막기도 했지요. 서로 힘을 모으자 어림없어 보였던 일이 실현되었어요.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예요. 지극한 마음과 노력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기도 해요. 그렇기에 여전히 우리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야기의 마지막, 사신은 “신비한 힘은 순간일뿐”이라고 말해요. 공주의 희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평화는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결국 ‘태평성대’를 이룰 힘을 가진 것은 사람이랍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지나가야 할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어요. 어른들 못지 않게 아이들의 마음도 메마르는 듯합니다. 그럴수록 ‘동화’의 고민도 깊어만 가지요.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들려주어야 할지 말이에요. 《동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탐화를 통해 현실감 있게 그리면서도 동화의 마음을 따뜻하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고단한 아이들의 마음에 《동해》가 위로가 되기를, 또한 아이들이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상남도교육청 고성도서관 추천